2차 시험도 끝났습니다. 역시 합격의 영광보다는 실패의 눈물을 흘리신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도 권토중래하시는 분들이 많으리라 생각됩니다. 다들 힘내세요. 이 글을 쓰면서 저도 힘내야겠네요. ^^
오늘은 유몽인의 '어우야담'에 관련된 글이 있길래 올립니다.
마음에는 드는데, 책값이 쪼금 쎄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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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사와 괴담으로 읽는 조선시대
황희 정승 아들 황수신이 말 머리를 벤 까닭 등
명사의 일화에서 음담패설까지 유몽인이 엮은 558편 이야기  

              - 신익철 이형대 조융희 노영미 옮김. 돌베개 펴냄. 6만원

황희 정승의 아들 황수신에겐 사랑하는 기생이 있었다. 아버지가 기방 출입을 끊으라고 여러 차례 엄하게 꾸짖었으나 아들은 말을 듣지 않았다. 어느 날 수신이 밖에서 돌아오니 황 정승이 관복을 차려입고 문까지 나와 마치 큰 손님 맞이하듯 했다. 아들이 놀라 엎드리며 까닭을 물었다. 황 정승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너를 아들로 대접했는데 도대체 말을 듣지 않으니 이는 네가 나를 아비로 여기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너를 손님맞는 예로 대하는 것이다.” 뉘우친 아들은 기방 출입을 끊기로 맹세했다. 김유신 등 ‘기생 끊기 고사’가 대개 그렇듯, 수신 또한 술 취한 자신을 기방으로 싣고 간 말의 목을 베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이 이야기는 조선 광해군 때의 문인 유몽인(1559∼1623)이 엮은 <어우야담>에 실려 있다. ‘야담’이란 저잣거리 이야기란 뜻이니, 엄숙한 선비가 책제목으로 삼을만한 말은 아니다. ‘어우’란 유몽인의 호 ‘어우당’을 줄인 것으로, 본디 <장자>에 나온다. ‘어슬렁거리다’ 또는 ‘쓸 데 없는 일을 하다’란 뜻을 담고 있다. 이렇게 보면 유몽인의 <어우야담>은 책제목부터 근엄한 조선시대에 대한 일종의 도발이었다.

이 책에 실린 558편의 이야기에는 장르가 ‘음담패설’로 분류될 만한 것도 있고, 오늘날까지 유머집에 단골로 오르내리는 것들도 있다. 가령 어떤 선비가 벗들 앞에서 일자무식인 아내가 글을 아는 것처럼 자랑하기 위해 <공총자>란 책을 가져오도록 하자 아내가 더욱 유식하게 보이려고 “전공(앞구멍)입니까? 아니면 후공(뒷구멍)입니까?”라고 물었다는 얘기 따위가 전자에 속할 것이다. 또 한 장군이 자기 병졸 가운데 공처가가 얼마나 많은지 보려고 “아내가 무서운 자는 붉은 기 아래, 그렇지 않은 자는 푸른 기 아래 서라”고 하자, 10만 대군 가운데 단 한 사내가 푸른 기를 지켰는데, 그 까닭이 “마누라가 사람 많은 곳엔 가지 말라 했기 때문”이란 얘기는 후자에 속한다.

이런 몇 대목을 들춰 <어우야담>이 시시한 농담의 집대성으로 여긴다면 큰 오산이다. 이런 대목들은 오히려 이 책이 얼마나 관용적인 기록인지 보여주는 단면이다. 유몽인은 민간의 우스개는 물론 효자 충신 열녀 지사 승려 도사 등 다양한 인물의 사람됨과 일화, 명사들의 문학 논쟁과 토론, 꿈 예언 재앙 등 괴이한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자료를 폭넓게 모으고 기록함으로써 당대의 삶과 정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려 했다.

가령 부모가 죽은 뒤 유교 법도에 따라 삼년상 치르느라 영양실조로 죽어나간 수많은 인재 이야기를 정리한 뒤, 그는 “우리 집안엔 효자가 필요없다”고 한 중종 때 정광필의 말을 기록했다. 충효가 지고의 가치이던 시절에 어버이가 오죽하면 이런 말을 남겼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또 정몽주가 진정으로 충절을 지켰는지, 이태백이 진정 호수에 비친 달을 잡으려다 죽었는지를 논하는 대목 등에서도 그의 비판적 이성은 돋보인다.

이 때문에 유몽인의 이 작품은, 불합리한 이야기를 삭제한 김부식의 <삼국사기>를 못마땅하게 여겨 옛이야기를 그대로 수록함으로써 우리 고대사를 풍부하게 만든 일연의 <삼국유사>에 맥이 닿는다. 또 위진남북조 시대 문인들의 삶과 사색을 생생하게 담아낸 중국 유의경(403~444)의 <세설신어>를 연상시킨다.

옮긴이들은 서로 다른 판본 27종을 견주어 <어우야담>의 원문에 표점과 교감 내용을 덧붙여 별책으로 묶었고, 본문 속에 나오는 동아시아 인물들에 대한 꼬마 사전도 덧붙였다. 독자들은 비로소 우리 고전에 대한 제대로 된 연구 번역을 만난 셈이다. 그러나 번역문 가운데 수장(水漿), 상식(上食), 임모(臨摹) 등 이미 죽은 옛말들을 풀이말도 없이 그대로 드러낸 건 아쉽다. 민간에 발을 깊게 담근 유몽인의 민중지향 정신과 어울리지 않는다. 또 중국을 ‘상국(上國)’이라 쓴다거나 ‘우리나라 말’을 ‘방언(方言)’이라고 옛말 그대로 옮긴 건, 연구자가 현대 한국인인지 의심하게 만드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