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께 소개하고 싶은 논문이 있습니다.

 

이동환(2005), 한문, 그 효용의 재발견, 어문논집 51호

류준경(2008), 「한문교육의 이념과 대학원의 역할」, 『한문교육연구』제30집, 한국한문교육학회.

 

이동환 교수님의 논문은 파일이 첨부가 되는데 류준경 교수님의 논문은 파일이 커서 업로드가 안되네요.  그래서 일부분을 아래에 싣겠습니다.

(원문 파일을 얻고자 하시는 분들께서는 한국한문교육학회 홈페이지나 kiss에서 다운받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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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준경(2008), 「한문교육의 이념과 대학원의 역할」, 『한문교육연구』제30집, 한국한문교육학회.

(상략) 

  사실 한문교육의 필요성은 주장되지 않아야 마땅하다. 우리가 태어나서 말을 배우고, 밥을 먹고, 김치를 먹는 것은 선택한 것이 아니다. 나의 주체적 판단이전에 선험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이때에는 말의 필요성, 밥의 필요성, 김치의 필요성이 중요하지 않다. 필요 이전에 이미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땅에 태어나는 순간, 생물학적으로 부모의 DNA를 물려 받는 것 처럼, 문화적으로 우리 말, 옷, 음식을 '그냥' 물려받는다. 나의 선택으로 영어가 아닌 우리말을 배우는 것도 아니고, 나의 선택으로 다다미방이 아닌 온돌방에 사는 것도 아니다. 이처럼 주체의 선택이 아니라, 이미 주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별도의 '필요성'이 주장되지 않는다. 필요성이 주장되기 전에 그냥 그렇게 나의 일부분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주체의 선택 이전에 이미 주어져 나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문화는 언어문화이다. 우리가 학교교육에서 국어를 배우는 것은 단순히 우리의 언어를 잘 이해하고, 사용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다. 국어의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등을 제대로 하기 위한 도구적인 것이 아니라, '나'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것을 성찰하고, 나아가 그것을 창조적으로 활용함으로써 나를 새롭게 구성하여, 보다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한 것이다. 한문 역시 마찬가지이다. 나를 구성하는 것은 지금 사용하고 있는 현실의 언어이다. 그리고 그 언어의 문자성은 많은 부분 한문에서 유래하였다. 이때 한문은 단순히 중국에서 탄생한 글자로서의 한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수 천 년간 우리가 문자언어로서 향유하였고, 그를 통해 우리의 삶과 문화를 이룩한 우리의 문자문화인 것이다.

  전통시대 우리의 문자문화는 한글과 한문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한문은 공식적인 문자로서 대부분의 문화영역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인간의 사유는 언어로 인해 구조화되고, 언어로 인해 발전해 왔다고 한다. 특히 구두어보다는 문자어를 통해 고도의 사유가 가능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전통시대 우리의 사유, 특히 보다 고양된 사유는 한문이라는 문자언어를 통해 이룩되었다. 이는 단순히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어휘 중 대부분의 개념어가 한자어라는 사실을 넘어서는 것이다. 공식적인 문어로서 한문이 사용되었기에, 기본적인 사유방식 자체가 한문 그 자체의 규범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 것이다. 곧 우리는 한문 그 자체의 규범과 관련된 방식으로 사유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여기 우리가 우리이게끔 하는 중요한 요소가 바로 한문이라고 할 것이다. 문화적 존재인 우리를 구성하는 것이 바로 한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문은 어떤 사용가치를 위해, 어떤 필요를 위해 교육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한문교육은 어떤 이익이 있기 때문에, 어떤 효용가치가 있기 때문에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나'가 '지금'여기'의 '나'이기 위해서 교육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김치와 된장맛을 알아야만 진정한 한국인 이듯이, 한문을 알아야만 진정한 한국인인 것이다.

  이제 한문교육의 이념은 보다 분명해졌다. 이 땅의 사람이라면 이 땅의 문화의 핵심인 한문을 이해해야만 한다. 지금 이곳의 나를 구성하는 핵심이 한문이기에 내가 부모를 선택하고, 나라를 선택하지 않았듯이 이미 나의 일부로 존재하는 것이 한문이기에 한문을 익혀야만 하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김치를 왜 먹어야만 하는지 질문하지 않듯이 한문을 왜 배워야 하는지 질문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요컨대 한문교육은 어떤 필요에 따라 존재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존재하는 한 그 자체로 합목적성을 띠는 것이다. 이 점이 바로 한문교육의 이념인 것이다. (하략)